박남숙시의원의 기고) 줄탁동시 (啐啄同時) 용인인터넷신문 2009-06-19 05:23 가 본문내용 확대/축소 본문 줄탁동시(啐啄同時)란 말이 있다. 또는 줄탁동기(啐啄同機)라고도 하는데 이 말은 병아리가 알에서 깨어나기 위해서는 새끼와 어미닭이 안팎에서 서로 쪼아야 한다는 뜻이다. 닭이 알을 깰 때에 알속의 병아리가 껍질을 깨뜨리고 나오기 위하여 껍질 안에서 쪼는 것을 ‘줄(啐)’이라하고, 어미닭이 밖에서 쪼아 깨뜨리는 것을 ‘탁(啄)’이라고 하는데 이 두 가지가 동시에 행하여 질때 사제지간이 될 연분이 무르익었음을 비유할 때 쓰이는 말이다.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이 말은 선종(禪宗)의 공안집(公案潗)에 실려있는 내용 중 하나인데, 이 공안이란 말은 선종에서 조사(祖師)가 수행자를 인도하기 위하여 제시하는 과제로써 화두라고도 한다. 깨우침을 위한 물음의 요체이자 수수께끼로 책으로 말하면 제목과 같은 것이다. 선을 수행하는 승려들은 하나의 화두만 가지고도 평생동안 참선하며 진리를 연구하기도 한다. 그 만큼 몇자 안되는 화두일지라도 그 속에는 깨달음의 이치가 숨어있어 그 뜻을 말로 표현 하는데는 한계가 있다. 깨달음을 말로 표현하기 위해 문자의 뜻에 얽매이는 순간 깨달음은 순식간에 날아가 버리고 다시 관념에 빠진다고 했다. 그래서 선종에서는 최소한의 언어만을 사용하며 관념의 세계를 용납하지 않는다고 한다. ‘줄탁동시’는 이러한 깨우침과 관련된 화두이다. 알 속에서 자란 병아리가 부리로 껍질 안쪽을 쪼아 알을 깨고 세상으로 나오려고 할때 어미닭은 품고 있는 알속의 병아리가 부리로 쪼는 소리를 듣고 밖에서 알을 쪼아 새끼가 알을 깨는 행위를 도와주는데, 여기서 알 껍질을 쪼아 깨려는 병아리는 깨달음을 향하여 앞으로 나아가는 수행자(修行者)며, 어미닭은 수행자에게 깨우침의 방법을 알려주는 스승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병아리와 어미닭이 동시에 알을 쪼기는 하지만 어미닭이 병아리를 세상 밖으로 나오게 하는 것은 아니다. 어미닭은 다만 알을 깨고 나오는데 작은 도우만 줄뿐, 결국 알을 깨고 나오는 것은 병아리 자신이다. 스승은 깨우침의 계기만 제시할 뿐이고 나머지는 수행자가 스스로 노력하여 깨달름에 이르러야 한다는 의미다. 또 깨달음에도 때가 있어 깨달아야 할 때 깨달지 못하면 헛일이라는 뜻도 담겨 있다. ‘줄탁’이란 생명의 세계에서는 달걀속의 병아리가 때가 되어서 밖으로 나오기 위해 달걀 속에서 어떤 한 부위를 부리로 쪼기 시작하면 어미가 밖에서 그 쪼는 부위를 아주 정확히 쪼아줌으로써 달걀을 깨고 병아리가 태어나게 되는 것을 말한다. 이런 작업이 안팎에서 동시에 작동하는 생명 탄생의 신비로운 비밀이다. 지난해 여름 서울 도심 한가운데에서 벌어진 촛불집회를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촛불집회는 2002년 월드컵 응원문화의 발전 과정에서 축제형식으로 등장해서 쇠고기 문제와 대운하 문제의 정치 아젠다에 대한 직접 민주주의 운동으로 그 차원을 높였다. 그러나 지난해 6월 10일 이후 폭력의 악순환이 시작한다. 한쪽은 낡아빠진 보수 꼴통이요 다른 한쪽은 좌파 시위꾼들이라고 적대시 하는 분열을 양상으로 변질되어 갔다. 프랑스에는 데모때 마다 복면을 쓰고 폭력선동으로 그 결과를 난장판으로 귀결시키는 파괴자들을 가리켜 ‘까쇠르’라고 하는데 이들의 목적은 아무이익도 없는 파괴뿐이다. 이러한 폭력선동을 조장하는 사람들은 데모현장에만 있는게 아니다. 인터넷도 있고 활자화된 신문에도 있다. 인터넷에는‘댓글알바’가 그것이고 신문에도 극우선동꾼이 존재한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느냐? 거기에는 진정한 리더십을 가진 자들이 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줄탁동시’가 이루어지지 않으니까 이런 병리적인 현상이 일어난다. 얼마전 삼성견제연구소가 CEO 회원 307명을 대상으로 불황극복에 도움이 되는 사자성어를 조사했더니‘줄탁동시’가 1위로 꼽혔다. 병아리는 안에서 알껍데기를 함께 쪼아야 부화가 되는 것처럼 불황기의 노사화합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전략이다. 서로 상생을 위해 협력하는 일 외엔 방도가 있을 수 없다. 알을 깨기 위한 상호작용이 있어야 한다. 병아리는 지금 알을 깨고 나오도록 돕고 있다는 신뢰와, 답답한 현실을 타개하려고 몸부림치는 병아리의 고충에 동참하는 어미닭의 ‘줄탁’이 합작품을 이룰 때 새로운 세계가 열릴 것이다. 용인인터넷신문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목록 댓글목록 이전글 6월에 돌아보는 어버이 은혜에 대한 글입니다 09.06.19 다음글 용인인터넷신문이 벌써 4주년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09.06.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