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혜경의 문화칼럼 14, 찌질이와 벤댕이 손남호 2013-04-17 00:14 가 본문내용 확대/축소 본문 한글이 자꾸 변한다. 지금도 변하고 있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의 급속한 확산으로 우리말은 점점 압축되고 변형되고 있다. 이제 세대 차이는 한글로도 소통을 어렵게 만들었다. 젊은이들의 언어를 어른들이 이해하지 못하고, 어른들이 즐겨 쓰는 한자, 성어들을 젊은이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이는 문화 차이로 더욱 극명하게 드러난다. 불과 십수 년 전까지만 해도 모든 것이 수(手)작업이었다. 나는 수작업으로 시작하여 컴퓨터로 잡지를 만드는 시기를 모두 거쳤으며, 이제는 웹진(Web-zin)을 경험하고 있다. 너무나 빠르게 진행된 이 변화들은 실업자를 양산하기도 하고, 범죄자, 심지어 사람을 자살로까지 내몰았다. 수작업이었던 시절, 귀한 인력이었던 사진식자 기술자들은 컴퓨터 보급으로 직장을 잃은 반면, 컴퓨터 관련 기술자들은 귀한 몸이 되었다. 인터넷의 확산으로 얼굴 없는 범죄자들은 또 얼마나 늘었는가. 원래 남의 사생활을 훔쳐보는 것만큼 흥미로운 일도 없지만 이젠 모든 사생활과 정보가 공개되는 사회에 우리는 살게 되었다. 연예인의 경우는 숨도 자유롭게 못 쉴 것 같다. 연애, 이별, 결혼, 이혼, 비밀 공간까지 모두 공개되는 것도 억울한데, 때로는 오해도 받고, 누명도 쓴다. 게다가 악성 댓글은 자살로까지 내모는 상황이 돼버렸다. 컴퓨터를 켜기가 두렵다. 사람을 살리고, 죽이는 공간에서 인간의 별별 모습을 다 보게 된다. 하나밖에 없는 생명을 잘도 포기하는가 하면, 혈육도 어느 날 원수가 되고, 원수도 어느 날 동지가 돼버리는 험악한 이 사회에서 자식 키우는 일이 너무나 어렵다. 언어와 정서도 달라 자녀들과 소통마저 어려운 시대가 돼버렸다. 한 지붕 아래 사는데, 문화권은 너무나 다르다. 문명, 문화의 발달이 인간에게 이로운 것만은 아닌가보다. 유익을 주기보다 해악(害惡)이 더 많다면 결국 인간은 자멸을 초래한 것이다. 문명의 이기로 인류를 살해한다면 차라리 원시로 돌아가는 것이 낫겠다. 가면 쓴 찌질이와 벤댕이가 왜 이리 많아졌는가. 급속도로 발전한 경제, 탁월한 인간의 두뇌가 발전시킨 IT 기술은 성질이 급하여 그물에 걸리는 순간, 죽어버리고 만다는 벤댕이로 인간을 몰아가고 있다. 실패한 사람만 자살하는 것이 아니고, 성공한 사람마저 그 자리를 유지하기 힘들다며 목숨을 버리고 있는 오늘날, 인류는 무엇을 추구하며 살아야 하는가. 사회에 만연되어 있는 이 우울증들을 치유하기 위해 우리는 사랑과 지혜를 모아야겠다. 심심풀이로 두들겨대는 자판으로 남의 사생활에까지 공격을 가하는, 그러면서 쾌감을 느낀다는 찌질이들도 소멸시켜야 한다. 자신들의 사소한 장난이 얼마나 큰 상처를 남기며, 그 파장이 얼마나 엄청난지를 그들은 정말 모르는 걸까. 이 모든 것의 기저엔 ‘소통의 부재’가 깔려 있다. 세상이 아무리 발달하고 변했다 해도 아름다운 대화가 사라지거나 오염된다면 인간 사회는 점점 더 비참해질 것이다. 윤혜경 / 음악 칼럼니스트, 뮤직필 대표 손남호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목록 댓글목록 이전글 윤혜경의 문화 칼럼 15, 비움의 미덕 13.04.30 다음글 윤혜경의 문화칼럼 13, 예술을 성과의 잣대로? 13.04.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