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주거형태 변천사 (최세일 건축사) 기고문 손남호 2011-09-21 10:08 가 본문내용 확대/축소 본문 방통대를 다니는 집사람의 교양과목 레포트가 하필 건축과 관련된것이라 떠맡아서 써주고나니 혹 도움이 되는 사람들이 있겠다 싶어 올려봅니다.^^ 교양과목이라 크게 전문성은 없으니 일반인들이 교양으로 보기는 적당할듯 하네요. 한반도에서의 주거형태의 변화는 고대에서 현재까지 여러 가지 요인에 의해 변화되어왔다.초기 고대의 주거는 인간이 자연을 극복하기 위한 과정에서 조금씩 진화했다.이후 주거시설에 대한 기술이 발달하며 한반도의 자연, 기후에 맞고 구하기 쉬운 재료를 찾아서 지역별로 다양한 형태를 유지해왔다. 근세에 들어 구 한말이후 서양의 문물을 접하고 한일합방과 해방 그리고 6.25를 겪고, 산업화를 거치며 단기간에 걸쳐 급격한 변화를 겪었다.이 100여년동안 고대에서 조선까지의 긴 기간보다 더 큰 변화를 겪었으며 그 변화는 지금도 계속 진행 중이며 경제력을 바탕으로 대한민국의 위상처럼 한국의 주택문화도 다른 문화와 함께 수출 되고있다. 앞으로의 변화를 예측은 역사를 통해 가능 할 것이며 변화를 예측하고 준비한일은 역사를 배우는 의미를 한 단계 끌어 올릴 것이다. 최초의 주거형태는 자연 동굴을 이용한 주거였다. 구석기 시대에는 농경생활이 시작되기 전이며 주로 수렵과 자연에서 채취 가능한 먹거리를 주로 이용했으며 수렵과 어로가 가능한 주변의 자연동굴을 찾아 비를 피하고 야생동물로부터 보호받기위한 단순한 피신, 은신처의 개념이라고 보는 것이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신석기 시대는 농경생활의 흔적이 보이며 이는 주거문화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가축을 기르고 농사를 지으며 정착된 주거지가 필요했으며, 농사를 위한 농수의 확보가 용이하고 어로가 가능한 강가에 주로 정착하였으며 일정깊이로 땅을 파고 원뿔 형태로 주거공간을 만들어 사용하였다. 재료는 흔희 구할 수 있는 나뭇가지와 갈대등을 이용하였다.청동기 시대와 철기시대에는 조금 더 발달된 도구를 사용하여 목재를 가공하는 것이 가능해 졌으며 신석기시대의 움집과 달리 사각형의 주거공간과 지면에 기둥을 수직으로 세우고 지붕을 구성하는 수준에 이른다. 부족국가를 이루며 계급사회가 형성되어 계층별 주거의 차별이 시작되는 시기이다. 이 시대를 통해서 한식목조주택의 가구 식 건축양식이 시작되었다 할수있다. 원시후기에는 지금도 강원도 산간에서 볼 수있는 귀틀집과 같은형식, 또는 고상식 주택 등이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이는 삼국시대 초기 고구려 벽화나 신라의 가형토기 등을 통해 확인 할 수 있다.삼국시대부터는 계층별 지방별로 다양한 특색을 나타내며 발전해왔다. 계층에 따라 집의 규모나 구조가 달랐으며 기후적 특성에 따라 북방식과 남방식의 구조가 달랐다. 상류층의 주택은 주로 목재를 이용한 기와집이고 서민들의 주택은 주로 초가집이었다. 주목할 사실은 이시기에 한반도 주거양식의 대표적 특징인 온돌이 시작된것이다 4세기 말~5세기초 만들어진 온돌은 오늘날까지 웰빙형 난방으로 해외에서도 주목받고있다. 고려시대를 거쳐 조선시대까지는 신분에따른 주택규제와 지역적특색이 좀 강해졌을뿐 기와집과 초가집으로 양분된 주거의 형태는 큰 변화없이 이어졌다. 여기서 지역적, 기후적 특성을 잠시 살펴보면 우선 한반도는 사계절이 뚜렷하며 여름은 덮고 강수량이 많으며 겨울은 춥고 눈이 많이 내린다. 산은 대개 완만하며 굿토의 70% 이상이 산지이며 목재가 풍부하고 4계절을 겪고 자란 나무는 단단하고 내후성이 좋은 나무가 많다. 여름에 덮고 겨울에 추운 기후로는 두꺼운 흙벽과 기와밑의 흙이 단열역할을 하고 있으며 겨울과 여름의 태양고도를 감안한 처마가 나와있다. 여름철 빗물에 대한 대비로 비교적 높은 기단부가 형성되었다. 겨울의 눈 때문에 기와지붕의 경사는 비교적 가파르다. 건축물의 주 재료는 풍부한 목재와 훍을 이용하였다. 상대적으로 추운 북쪽은 집의 구조가 방이 두겹으로 겹쳐진 구조로 밭전자의 평면 구성이 많다. 이에비해 덜추운 남쪽의 평면은 방의 앞뒤가 터진 외겹의 한일자형 또는 ㄴ 자형면이 많다, 이에비해 중부지방은 그 중간인 마루와 방이 겹쳐진 평면이 많다. 이러한 특징은 우리 주택이 조형뿐 아니라 자연환경이 요구하는 기능적 특성을 잘 반영하여 발전 되어 왔음을 보여준다. 온돌역시 겨울과 여름에 따듯하고 시원한 특징을 갖는다. 조선후기까지 특별한 변화가 없던 주택은 역사적 구한말 역사적 소용돌이에 휩쌓이면서 많은 변화를 격는다.대원군의 쇄국정책이 빗장을 열며 서양의 선교사들은 이땅에 서양식 주택을 짓게된다.벽돌을 쌓고 벽에는 양회를 하얗게 바르고 지붕엔 기와등이 얹어졌다. 주로 서양인들과 일본인들의 손에 의해 지어졌다. 개화기의 지식인들은 이러한 집을 선호하여 짓기도 하였으나 많이 보급되지는 않았다.이후 한일 합방이 되면서 일본인들에의해 우리의 전통건축보다는 일본인들의 다다미집이 많이 지어졌다. 이는 해방이 되며 제자리를 찾았으며 강압에의한 문화의 합병이 결코 완전히 성공할수 없다는 예를 보여주는 사례이다. 전쟁이 끝나고 54~57년까지는 전쟁복구 시기이므로 주택이 너무 부족했다.재건주택이라는 이름으로 그당시에 지어진 군집형 주택은 시멘트 유리등의 산업이 성장하기 전의 시기이므로 흙벽돌이 많이 사용되었다. 이후 서양의 주택문화가 본격적으로 들어오면서 1958년 우리나라 최초의 아파트가 지어졌다. 이후 한식과 양식, 좌식과 입식이 혼용된 주택이 지어졌으며, 점차 서구화 되고 입식화 되었다. 가장 주목할만한 변화는 거실이라는 공간이 생긴것과 부엌이 입식화되었으며 샘에서 길어오던 물이 수도배관을 통해 주방으로 들어온 것이다. 지금은 대부분의 집에서 침대생할을 할만큼 서구화 되었다. 60년대부터 급격한 산업화를 겪으며 도시에는 공동주택이 많이 지어졌다.60년대는 주로 연립이 70년대부터는 아파트가 본격적으로 지어졌다. 당시의 아파트는 주 연료가 연탄이기에 아궁이가 있는 아파트였다. 아파트는 여의도 시대와 강남개발 90년대초반 신도시 200만호 건설로 주택보급률 상승에 가장 큰 역할을 했다.올림픽이후 한국의 경제성장으로 주택에 웰빙개념이 도입되었다. 90년대초 타워팰리스로 대표되는 주상복합 아파트는 하부의 상가를 이용 주민들에게 필요한 시설들을 대폭 강화하여 편의성을 높였다. 운동시설과 휴게시설등이 강화되어 생활의 질을 높이는 고급화가 시도되어 이때부터 중대형 아파트의 투기가 시작되고 한동안 중대형 아파트의 선호는 계속 유지되었다. 이후 가장 큰 변화는 핵가족화로 인한 단독세대주가 많아졌다는 점이다.수요자가 존재하는 원룸형 주택에대한 과도한 규제는 많은 사람들을 범법자로 만들었다. 다세대 주택의 한세대를 둘, 셋으로 나누어 불법개조를 하는 사람들이 생겨날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최근 정부는 "도심형 생활주택" 이라는 이름으로 단독세대주가 거주하기 편리한 원룸형의 주택을 지을 수 있도록 제도를 정비하였다. 또한 보금자리 , 시프트 등을 통하여 부족한 도심의 서민주택을 해결하는 노력을 하고있다. 농촌의 경우 박정희 대통령의 새마을 운동의 일환으로 농촌주택 개량사업을 벌여서 깨끗해지긴 하였으나 주거와 작업의 두 가지 기능이 무시된 단순 주거형의 주택으로 농촌의 실정에 맞지 않는 실패한 주택의 형태라고 평가하는 이들이 많다. 지금은 농사일이 많이 현대화하여 궂이 집에서 작업을 해야 하는 일은 드물어 농촌에도 아파트나 연립의 형태가 지어지는 사례가 있다. 써프라임 사태로 인한 금융 위기는 석유파동을 만들고 이로 인해 연료비등의 비중이 높아지며 소형평형의 선호현상이 생겨났으며 이러한 현상은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다.이는 단기적인 현상이 아니다. 제한된 화석에너지원은 그 희소성으로 가치가 점점 상승 할 것이며, 이러한 이유가 아니더라도 지구환경 보호를 위해 화석에너지의 사용은 억제되어 질 것이다. 결국 21세기의 주택은 "에너지 비용을 얼마나 줄일수 있는가?" 라는 물음에 대한 답을 찾는 방향으로 발전 될 것이다. 현재 한국은 공공건축에 한하여 건축비의 5%를 에너지 절약 비용으로 사용화 하는 것이 의무화 되었다. 다음은 공동주택이 그 대상에 포함될 것이며 점차 일반건축물과 단독주택을 포함한 모든 건축물에 적용 될 것이다. 이제는 국가별 문화의 특성보다는 글로벌 명제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주택이 발전 할 것이며그 명제가 "에너지 절약, 친환경" 이다. 독일등의 선진국은 이미 화석에너지의 사용을 전혀 하지않는 제로하우스단지가 시범 운영되고 있으며 우리도 포스코, 삼성, 대림등 선두권의 기업들이 이를위한 연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우리는 과거 주택의 변천 과정을 역사적으로 배우면서 주택이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며 진화해온 사실을 알수있다. 사실을 아는데서 그친다면 역사는 과거를 위한 학문이 될 것이다.이를 바탕으로 미래의 변화를 예측하고 적절히 대응하도록 역할을하는 미래를 위한 학문이 되어야 할 것이다. 미래형 주택은 주택으로서의 특성보다는 미래산업과 연계되어 진화할 것이며 이를 어떻게 잘 활용 할 것인가에 대한 연구는 결국 미래산업의 발전을 촉진시키는 촉매가 될 것이다. 기고자: 최세일(건축설계사) 손남호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목록 댓글목록 이전글 시민장학회 이사들의 책임강화와 분발이 요구된다 11.09.22 다음글 제11탄 나는 외지인이다. 제자인 여중생을 성폭행한 파렴치한을 옹호하는자. 용인시를 떠나라 11.09.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