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일의 꿈은? 청소년의 가슴에 꿈을!②
손남호 2009-10-23 0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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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말할 것도 없이 청소년은 조국의 미래다. 이 나라의 장래는 청소년을 어떻게 키우느냐에 달려있다. 청소년이 살기 좋은 환경과 여건을 만들어 주는 것, 이것은 어른의 책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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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 교육은 이 땅에 사는 모든 부모들의 최대 관심사다. 과연 그들이 쏟아 붓고 있는 교육에의 관심과 투자는 올바른 방향으로 이뤄지고 있는가? 청소년에게 정작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전,한국감사협회 회장을 지낸 김재일 경기청소년운동연합 대표가 쓰는 ‘청소년의 가슴에 꿈을!’이란 주제의 두 번째 이야기다. 이 기사의 내용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소 다를 수 있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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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일 경기청소년운동연합 대표
 

경민이 이야기

 

딸 은영이와는 달리 세 살 어린 아들 경민이는 부모한테 착 달라붙는 맛이 있었다. 그래서 어렸을 때 부모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특히 나의 경우, 스스로 생각해도 아들을 편애하는 것이 분명했다.

 

내가 워싱턴 특파원으로 부임하자마자 그는 그곳 초등학교에 1학년으로 입학했다. ESL(제 2외국어로서 영어)과정을 6개월 만에 마친 후, 학교 공부를 곧잘 했다. 내가 테스트해 본 바로는 그의 초등학교 2학년 때 영어 독해력은 최소한 국내 고등학교 2학년 정도의 수준은 되는 것 같았다. 책을 빠르게 읽고 이해했다.

 

나는 미국 특파원을 마치고 돌아와서 경민이가 초등학교 4학년 때 그를 육지로는 우리나라 최남단인 내 고향으로 유학을 보냈다. 그곳에는 나의 부모님이 살고 계신다. 경민이의 시골 유학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우선 나는 오래전부터 서울의 자녀교육 환경과 분위기에 대해 내심 못마땅하게 생각해 왔던 터였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피아노와 미술 교습, 그리고 영어, 수학 등 과외 공부를 위해 학원에 다녀야 했다. 잠시의 틈도 주지 않고 아이들을 혹사시키고, 그렇게하지 않으면 불안해 할 수 밖에 없는 교육환경에 대해 어느 정도 회의를 가지고 있었다. 그 맘때 쯤의 성장기에는 모든 속박에서 해방시켜 고향의 공기를 호흡하며 자연 속에서 마음껏 뛰어놀게 하고 싶었다.

 

경민이는 시골에 가자마자 학교 친구들과 어울려 온 동네를 쏴 다니며 열심히 놀고 운동도 한다고 했다. 그는 전화 목소리부터가 훨씬 씩씩했다. 그가 전체 10명 남짓 밖에 안되는 4학년 반에 도중에 들어갔으니 점심용 급식이 그의 몫으로 나오려면 몇 주 동안 기다려야 했다. 그동안 급우들은 돌아가면서 점심을 굶고 대신 경민이에게 자기 몫의 급식을 제공했다고 한다. 큰 도시에서는 있을 법하지 않는 이야기였다.

 

원래 2년을 계획하고 내려갔으나, 1백명이 안되는 학교는 폐쇄시킨 정부의 조치로 말미암아 1년만에 그는 올라와야 했다. 나는 경민이가 어린 시절 아름다운 자연과 풍성한 인심을 체험하며 보낸 그 1년이 그의 가슴 한켠에 소중한 추억으로 자리하고 있을 것으로 믿는다.

 

사춘기가 되자 경민이의 모든 것이 180도 바뀌었다. 안 좋은 쪽으로. 그의 생각은 온통 부정적인 것들로 가득 차있는 듯이 보였다. 행동은 반항적이고, 생활은 무질서했고, 도무지 대화가 되지 않았다. 어쩌면 그렇게 바뀔 수 있을까? 어려서는 그토록 부모의 말을 잘 듣고 사랑을 독차지 했었는데.....

 

학교 공부는 아예 관심이 없는 듯했다. 그렇게 자신 있어 했던 영어에도 흥미를 잃었다. 여기에는 학교에서 문법 위주의 죽은 영어를 가르치는 학교 영어교육의 내용에도 문제가 있었다. 지금은 많이 개선된 것으로 알고 있다.

 

실망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그의 장래가 뻔히 보이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아들이 과연 대학에는 들어갈 수 있는 것일까? 걱정스러웠다. 경민(敬民)이란 이름은 백성을 섬기라는 의미로 내가 지어준 것인데, 그러기는 커녕 자신의 앞길도 제대로 추스르지 못할 것 같았다.

 

그때 나는 누나에게 했던 것처럼 경민이를 부를 때 역시 “My son, my pride!" (내 아들, 나의 자랑)란 호칭을 썼다. 학교 성적은 형편없고, 모든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데, 무슨 ‘나의 자랑’이란 말인가? 치욕만 되지 않으면 다행일 것이었다. 분명 내 마음과 그 호칭과는 한참 어긋나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억지로 그렇게 불렀다. 그리고 나중에는 그 호칭이 습관이 되었다.

 

그런데 그에게 역시 기적이 일어났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것이다. 고등학교 2학년 하반기쯤일까? 그가 분발해서 공부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지금 그는 좋은 대학에 다니고 있다.

 

내가 아들에게 물었다. “나는 네가 대학에 진학을 못할 줄 알았다. 그런데 어떻게 마음을 고쳐먹고 그렇게 열심히 할 생각을 했지?” 그때 나는 놀랍게도 딸 은영이에게서 들은 똑같은 대답을 경민이에게서도 들었다.

 

“아빠가 나를 ‘자랑’이라고 불렀던 말이 가슴에서 되살아나서 나를 분발시켰다. 계속 나를 그렇게 불러주었는데, 만약 대학에 못 들어가면 아빠의 치욕이 되는 게 아닌가. 그래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내가 처음에는 의도적으로, 나중에는 습관적으로 했던 그 호칭이 바로 그의 목표, 꿈이 되었다고 나는 믿는다.

 

그는 지금 군대에 가 있다. 입대하기 전 나는 아들에게 말했다. “내 생각에 군생활은 지금 단계에서 네게 꼭 필요하다. 지금 불안하겠지만, 그것이 어떤 형태의 고생이든 너에게 보탬이 된다는 생각으로 용기를 내라. 야박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기왕 하는 군대생활인데 가급적이면 고생하는 데로 가서 하겠다고 생각해라. 왜냐? 고생이 클수록 네게 더 큰 도움이 될테니까.”

 

나는 아직도 조금은 게으르고 소극적이고, 부정적인 그의 마음이 군대생활을 통해 확실하게 변화될 것으로 기대한다. 생각과 삶의 태도가 더욱 진취적이고 씩씩해지리라고 믿는다.

군대에서 아들이 멋진 사나이로 다듬어지고, 빚어질 것을 상상하면 기분이 좋다. 나는 경민이가 그렇게 되리라고 믿는다. 그는 지금 군 생활에 잘 적응하면서,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필자 김재일 약력

 

1953년생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졸업

한국일보·코리아타임스 기자

한국기자협회 국제교류분과 위원장

국제기자연맹(IFJ) 제 19차 총회 한국대표

시사저널 정치부장, 워싱턴 특파원

경원대 신방과 겸임교수

대한건설협회 상임감사

2008 아시아감사인대회 대회장

(사)한국감사협회 회장

현, (사)한국감사협회 명예회장

경기청소년운동연합 대표

새에덴교회 장로

 

-저서

 

팥으로 메주를 쑨다해도 (동연, 2002년)

첫사랑의 뜨거움을 찾아서 (쿰란, 2005년)

희망언어 (동연, 2007년)

오바마 뛰어넘는 상상력 스피치 (풀그림,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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