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들을 귀가 있는 자는 알아들을 일이다 손남호 2011-05-19 07:42 가 본문내용 확대/축소 본문 권력을 비판한 글들의 수난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예전부터 혀끝, 붓끝, 거시기끝(三根-舌根, 筆根, 男根)을 조심하라고 말하곤 한다. 화를 불러오는 세 관문이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권력을 비판한 글들에 대한 탄압이 역사적으로 혹독했다. 요사이 용인시청안에서 시장실에 대한 시스템을 보완하여 시장을 잘 보필하라는 글에 대하여 여러말들이 나오는 가운데 아첨꾼들이 또한번 너스레를 시장에게 귀동냥을 시켜준것 같아 씁슬하다. 다음은 글에 대한 역사적 탄압의 기록을 적어 문자옥(文字獄) 내지 필화(筆禍)의 역사다. 제나라 최서는 진실을 쓴 사관을 죽이고, 진나라 시황제는 분서갱유(焚書坑儒)로 사상을 통제했다. 영혼을 훔친 황제의 금지문자는 대단했다. 작년 노벨상 시상식에 수상자 본인은 물론이고 대리인조차 참석하지 못하는 노벨상 109년 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 2010 노벨평화상 수상자 류샤오보(劉曉波) 사건도 권력 비판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류샤오보는 수감 중이고, 그의 부인은 가택연금 상태다. 류샤오보는 언론 자유와 공산당 1당 독재 폐지를 촉구하는 `08헌장`을 주도한 혐의로 11년형을 선고받았다. 죄목은 `국가정권전복죄`. 중국 정부는 `범법자`인 류샤오보가 노벨 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된 데 대해 강력히 반발하며 류샤오보와 그의 가족은 물론 각국 사절단까지도 노벨평화상 시상식에 참석하지 말 것을 요구했었다. 1심 재판 최후진술서에서 류샤오보는 "내가 중국 역사 속에서 `문자옥(文字獄)`의 마지막 피해자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중국에서는 문자나 글 때문에 화를 입거나 옥살이하는 일을 가리켜 문자옥이라고 한다. `글`은 주로 체제나 권력자를 비판하는 사례가 많다. 중국의 저술가 왕예린이 쓴 `영혼을 훔친 황제의 금지문자`는 문자옥의 역사를 돌아보는 책이다. 문자로 인해 고초를 당하거나 목숨을 잃은 지식인들의 이야기를 통해 중국 역사의 이면을 들여다볼 수 있다. 중국 역사상 가장 유명하면서도 끔찍한 문자옥은 아마도 진시황 때 `분서갱유`다. `분서`는 실용서를 제외한 모든 사상 서적을 불태운 사건으로 당시 승상이었던 이사(李斯)의 건의로 이뤄졌다. `갱유`는 자신을 비판하는 유생들에게 분노한 진시황이 유생 460명을 산 채로 땅에 파묻어버린 사건이다. 사상을 통제하고 왕권을 수호하려는 목적에서 벌어진 일이었으나 갱유가 일어난 지 2년 후 시황제는 세상을 떠났고, 그로부터 3년 만에 진나라는 멸망하고 말았다. 이 사건을 두고 당나라 시인 `장갈(章碣)`은 이렇게 노래했다. "분서의 연기가 채 가시기도 전에 산둥에서는 진승과 오광의 난이 일어났으니 진나라를 무너뜨린 유방과 항우는 글 읽는 선비 출신이 아니었거늘 (坑灰未冷山東亂 劉項原來不讀書)." 지식과 문화를 짓밟는 권력은 오래가지 못함을 지적했다. 또한 중국 봉건사회에서 일어난 반역의 주인공은 지식인이 아니라 책을 읽지 않은 세력이었다는 점도 꼬집고 있다. 문자옥은 "권력과 글의 알력이 빚어낸 감옥"이다. 이 말은 문자옥의 성격을 정확하게 드러낸다. 지식인들은 글로써 체제를 비판하고 감시했으며, 권력자들은 그들을 견제하기 위해 문자옥을 사용했다. 중국 역사에서 가장 처음 등장한 문자옥의 사례는 춘추시대 제나라 장공(莊公) 때의 일이다. 이 이야기는 권력과 글의 싸움에서 끝내 승리를 거두는 것이 누구인지를 분명히 알려준다. 제나라의 대부 최서(崔抒)가 왕인 장공을 살해하고 권력을 쥐자 당시의 태사(太史ㆍ사관을 뜻함)는 `최서가 왕을 시해했다`고 있는 그대로 기록했다. 자신을 비난하는 글을 본 최서는 그 자리에서 태사를 처형하고 그의 동생을 후임으로 임명했다. 하지만 최서의 생각과 달리 새 태사 역시 붓을 굽히지 않고 최서의 죄를 그대로 기록했다. 최서는 다시 태사를 처형하고 그 가문에 남아 있던 마지막 사내를 세 번째 태사 자리에 앉혔다. 그러나 그 역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최서가 왕을 시해했다`고 적었다. 그 강직한 모습에 오히려 겁을 먹은 최서는 더 이상 태사의 목을 치지 못했다. "펜은 칼보다 강하다.(문은 무보다 강하다.)" The pen is mighter than the sword . 글이나 책을 읽다 보면 새삼 그 말이 떠오른다. 펜이 칼보다 강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아마도 글 자체가 갖고 있는 생명력 때문이다. 칼은 칼자루를 쥔 인물과 운명을 함께하며, 그가 죽으면 함께 없어진다. 그러나 글은 쓴 사람이 사라져도 스스로 살아남아 자신의 옳음을 증명하고 부당한 권력을 꾸짖는다. 알아들을 귀가 있는 자는 알아들을 일이다 손남호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목록 댓글목록 이전글 청문회소식) 담당공무원들의 행정실태, 코가 막히고 기가막히는 행정을 하고 있다 11.06.02 다음글 칼럼_지역갈등의 시작과 끝은 어디인가 11.05.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