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평양방문 결실을 기대하며 용인인터넷신문 2009-12-20 09:54 가 본문내용 확대/축소 본문 정말 어렵게 평양에 갔습니다. 원래는 지난주 토요일에 중국 심양에서 오후 비행기를 타고 가려고 했는데 ,북한이 화폐개혁과 여러가지 사정으로 인해 비행기 손님이 없어 결항을 시켜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북경에서 평양으로 가야 했습니다. 비자 발급 문제 때문에 다른 사람들은 전날 출발하고 저는 토요일 새벽에 일찍 출발을 해서 평양에 가게 된것입니다. 소강석목사 정금석권사 지난 일년동안 남북관계가 민간인 교류조차 전혀 없을 정도로 냉각기 였습니다. 그런데 올해 처음으로 저와 우리교회성도들이 가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 했을때 최근의 남북관계를 말해주듯 그곳의 날씨는 영하 13도의 추운날씨였고 살을 에는 듯한 칼바람이 불었습니다 우리는 그 바람을 맞으며 조선그리스도연맹 직원들의 영접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우리가 간첩이라도 되는 듯 의아해하고 예의 주시하는 눈빛이었습니다. "도대체 저들은 남쪽에서 얼마나 백이 좋고 힘이 있길래 여기에 들어 왔지? "NCC 여의도 순복음 교회를 막론하고 어떤 민간단체도 못들어 왔는데 소목사와 새에덴교회 성도들은 어떻게 여길 왔지?" 이런 눈빛을 그들의 눈빛에서 읽을 수 있었던 것이였습니다. 그러나 저의 특유의 친화력과 유머감각으로 냉각은 금새 풀렸습니다. 양각도 호텔에 여장을 푼 우리는 곳바로 호텔 만장이라는 식당에서 강영섭 위원장이 베푸는 환영만찬에 참석하였습니다. 그자리에서도 저는 차가운 분위기를 곧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소강석 목사 북한교인들 설교하는 소강석목사 그리고 이튿날 봉수교회에서 35분 동안 어떤 제제도 받지 않은채 설교를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여전히 우리를 경계하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1여년 만에 처음으로 봉수교회를 방문하고 설교도 처음 하게되었기 때문입니다. 강영섭위원장과 소강석목사 배웅하는 북한주민들 거기서도 저는 우리가 한 민족임을 강조 하면서 차가운 분위기를 녹이며 차분하게 설교를 했습니다. 물론 할말은 다했습니다. 간혹 웃기도하고 아멘도 유도하면서 분위기를 주도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의 따뜻한 박수와 눈물어린 배웅에 너무 가슴이 저렸습니다. 그 이후로도 저는 비공식 자리에서 할 수 있으면 민족을 위한 제한들을 했습니다.그러나 그쪽에서는 남한에 대한 못마땅한 이야기들을 많이 쏟아 냈습니다. 우리정부의 통일부 정책에 대해 아주 쓴소리와 비판을 계속 했습니다. 그때마다 저는 민간인 명예교류대사가 되어 중재를 했습니다. "좋습니다.당연히 북쪽에서는 북쪽입장에서 이야기를 해야되겠지요 그렇다면 저는 남쪽입장에서 이야기를 말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저는 자유민주주의 체제에서 수십년을 살아왔기 때문에 시장경제와 민주주의에 익숙할수 밖에 없고 당신들은 여기에 살고 있으니 사회주의 체제에 익숙하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그러나 우리 서로의 체제에 대해서는 언급 하지말고 민족의 장래를 위해 이야기 합시다. 그리고 우리가 한민족으로서 서로 교류를 해야하는데 통일부를 비판하는 것도 멈춥시다. 남한에서는 통일부보다 보수세력과 대통령이 더 중요합니다. 우리 대통령께서는 CEO출신이고 건설과 토목,운하에 전문가 중의 전문가이십니다. 그래서 한편으로 그분은 경영자 출신이기때문에 화통하고 화끈합니다. 그런분이 근본적으로 북쪽에 대한 애정이 없겠습니까? 당신들은 우리 대통령을 너무 모르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 우리의 대통령에 대해서 더 분석하고 연구해서 대남 전략을 한번 바꿔보십시요. 무슨조건이 그리 많고 자존심만 부립니까? 남쪽의 원조를 받고 싶으면 조건없이 정상회담을 해보세요. 우리 대통령께서 응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민족 문제에 대해 가만히 계시겠습니까? 조건없이 정상회담을 하면 남쪽의 보수세력도 반대하지 않을 것입니다. 자연스럽게 풀어가면 될것을 임진강 방류나 서해사건 같은 것을 통해서 남쪽국민들의 심기를 건드리십니까? 북쪽의 고구려 기상을 이어받아서 자꾸 자존심만 앞세우는것 같은데 혹 미국과 일본에 대해서는 그럴지라도 한민족끼리 그래서야 되겠습니까?" 사실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여기서는 한가지만 말씀드리려 합니다. 아무튼 제가 그렇게 말하자 " 아 정말 소목사님 배짱하나는 대단하십니다." 라고 북의 선교부장이 말을 했습니다. 그리고 강영섭위원장도 저의 배짱하나는 끝내 준다면서 어떻게 여기까지 와서 이런 이야기를 할수 있느냐는 것이였습니다. " 소목사님은 정말 솔찍하고 화끈하고 우리민족을 사랑하시는 분이시네요. 소통과 평화의 중재자인 것만은 분명하시네요" 물론 그분들에게서 제가 한 모든 이야기의 동의를 받은 것은 아닙니다. 그분들도 나름대로 자신들의 반대의견을 표현했어요. 물론 저로서는 서로가 다를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남북간의 평화적인 교류를 위해 서로가 노력하자고 했습니다. 결국 제가 이야기 한 걸 대남전략을 담당하고 있는 상부에 그들이 다 보고를 한 것입니다. 사실 교회가 이런일을 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독일 교회들을 보십시요. 서독과 동독 정부가 서로 대치하고 반목할때 교회들이 물밑에서 끝임없이 교류하고 지원했습니다. 동,서독 통일의 밑거름이 된 것입니다. 우리민족도 하나님의 교회를 통해 그렇게 역사하시면 통일이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그 후 우리는 볼링을 함께 쳤습니다. 그런데 제가 볼링을 치기전에 내기를 하자고 했습니다. 옆에 있던 배영수 집사님은 음료수 내기를 하자고 했어요. 그런데 제가 선교부장님한테 " 우리끼리 내기 한번 합시다. 우리가 결정하는것은 아니지만 남쪽이 이기면 남쪽이 원하는 방식으로 통일을 북쪽이 이기면....." 저는 이길 자신이 있어서 그렇게 제안을 한 것이지요. 그런데 그쪽에서 자신이 없는지 내기는 다음에 하고 친선 교류차원에서 하자는 것입니다. 결과는 제가 170~180점 그들은 110~120점이었습니다. 마지막날 공항에서 그들은 45도 각도로 우리에게 인사하면서 고맙고 미안한 마음을 표현하며 배웅을 했습니다. 이것이 우리민족의 한계이고 현실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갈때는 추웠지만 올때는 날씨가 풀렸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방북으로 남북간의 교류가 다시 이어지지 않을까 하는 사인으로 생각해 보았습니다. 우리는 따뜻한 햇살을 북녘에 남긴채 순안공항을 떠나 왔습니다. 주일을 빠뜨리면서 까지 방문한 것이였기 때문에 곧 남북이 그날의 날씨처럼 풀렸으면 하는 마음이 지금도 간절합니다. 속히 남북 교류와 더불어 통일의 날이 오기 바라고 이를 위해 우리 성도들이 한줌의 중보요 징검다리들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을을 갖고 기도하며 지금 이글을 쓰고 있습니다. 소 강 석 시인, 목회학 박사 칼빈대 석좌교수, 국민일보 이사 용인인터넷신문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목록 댓글목록 이전글 용인 국민건강보험공단 보장구 무료 대여 사업 실시 09.12.21 다음글 용인시디지털산업진흥원 MOU 체결 09.1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