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일의 꿈은? 청소년의 가슴에 꿈을!
손남호 2009-10-15 0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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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일 경기청소년운동연합 대표

 

두 말할 것도 없이 청소년은 조국의 미래다. 이 나라의 장래는 청소년을 어떻게 키우느냐에 달려있다. 어른은 청소년이 살기 좋은 환경과 여건을 만들어 줄 책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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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 교육은 이 땅에 사는 모든 부모들의 최대 관심사다. 과연 그들이 쏟아 붓고 있는 교육에의 관심과 투자는 올바른 방향으로 이뤄지고 있는가? 청소년에게 정작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전,한국감사협회 회장을 지낸 김재일 경기청소년운동연합 대표가 ‘청소년의 가슴에 꿈을 !’ 이란 주제인바 편집방향과는 다소 다를수 있다.

-편집자주-

 

은영이 이야기

 

나는 남매를 두고 있는 데, 위로는 딸이고 아래가 아들이다. 딸 은영이는 올해 23살인데, 어렸을 때 나와 사이가 썩 좋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은 딸 키우는 재미가 있다고 하는데, 나는 그러질 못했다. 무언가 사이클이 안맞아 항상 부딪히는 느낌이었다. 엄마하고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고집이 센 것 같기도 하고, 좀 산만한 느낌이기도 했다. 그러다가 초등학교 4학년때 내가 언론사 특파원으로 워싱턴에 부임하면서, 2년간 미국에서 초등학교를 다니게 되었다. 그때도 마찬가지였다. 서로의 관계는 호전되지 않았다.

 

귀국해서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를 다니게 되었는데 도무지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했다. 공부를 잘 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감히 언감생심,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의 방을 들여다보면 정신이 없을 정도로 어질러져 있었다. 내가 원한 것은 딸이 학교공부를 따라가지는 못할지라도 정리 정돈만은 제대로 하는 것이었다. 나중에는 딸의 얼굴을 보면 화가 날 지경이었다. 입에서 좋은 말이 나갈 리가 없었다. 야단, 질책, 훈계......

 

딸을 생각할 때마다 심란했다. 나는 크리스천으로서 당연히 그를 위해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 그러나 그때마다 커다란 벽을 느끼곤 했다. 아, 내 딸이 이렇게 문제아가 되는 것인가! 절망감에서 헤어날 수 없었다.

 

그런데 그때 나는 엉뚱한 짓을 했다. 딸 은영이를 부를 때 “My daughter, my pride!"(내 딸, 나의 자부심)로, 아들 경민이를 부를 때는 ”My son, my pride!"(내 아들, 나의 자랑)로 불렀다.

 

내 스스로 쑥스럽고, 민망했다. 왜? 속으론 화가 나서 부글부글 끓고 있는데, 또 절망감으로 심란해 있는데 딸에 대한 호칭을 그렇게 하려하니, 스스로 위선이란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는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억지로 그렇게 불렀다. 습관이 되니 그 호칭이 그렇게 어렵지는 않았다.

 

그러다가 은영이는 중학교 2학년때 미국 테네시주 내슈빌에 있는 이모집으로 가서 학교를 다니게 되었다. 딸이 하루가 다르게 달라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모의 지도 스타일과 미국의 교육제도가 그의 바람직한 변화에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은영이는 내슈빌에서 굿패스처 고등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장학금을 받고 사우스 캐롤라이너주 찰스턴에 있는 찰스턴 남대학교에 입학했다. 대학에 입학한지 몇 주가 지나 나는 그로부터 전화를 받고 깜짝 놀랐다. 학생회 간부 선거가 있는데, 1학년 학생대표로 출마하겠다는 것이었다.

 

은영이는 친구들과 함께 밤새 포스터를 그려 교내 곳곳에 붙였고, 그들과 함께 2주 동안 돌아다니면서 선거 캠페인을 벌였다고 한다. 결국 그는 당선되어 대학생활 중 활동 반경을 넓히는 계기를 만들었다.

 

6개월 후 그는 다시 선거를 통해 총학생회 집행부의 일원인 총무가 되었고, 3학년 때는 총학생회장이 되었다. 그 대학교에서 유학생으로 최초의 총학생회장이었고, 유학생 신분으로 미국 대학교 총학생회장이 된 것은 한국 최초의 기록이기도 하다. 국내에서는 국민일보와 동아일보가 대서특필했다.

 

은영이는 공부에서 탁월한 성적을 보였을 뿐 아니라, 학생회 활동, 교내 가이드, 태권도 배우기, 교회 봉사, 경로당 플륫 봉사 등을 통해 알차고 영예롭게 대학생활을 마쳤다. 그는 한 한기를 조기 졸업한 후 미국 회사에 다니다가, 귀국해 직장 생활을 하고 있다.

 

나는 언젠가 딸에게 물은 적이 있다. “네가 여기서는 학교생활도, 방 정리 정돈도 형편없었는데, 어떻게 그렇게 변할 수 있었지?” 그때 나는 그로부터 놀라운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어렸을 때 나도 내 자신을 한심하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아빠가 항상 나를 ‘아빠의 자랑’이라고 불러 주었다. 가족과 떨어져 살면서 그 말이 줄곧 생각났고, 꼭 아빠의 자랑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처음에는 자녀에 대한 태도와 관련해 내 스스로에게 암시라도 주듯이 그런 호칭을 사용했다. 그 후에는 습관적으로 별 생각없이 그렇게 불렀는데, 딸을 변화시키는 의외의 효과를 얻은 것이다. 나는 이 경험을 통해 말은 그 자체로서 생명력을 지닌다는 사실을 다시한번 확인했다.

 

내가 의도적으로 불렀던 “내 딸, 나의 자랑”이란 말은 부지부식간에 딸의 가슴에 깊이 아로새겨졌고, 어떤 계기를 만나 그를 변화시키는 힘으로 작용했던 것이다. 그래서 은영이는 아빠의 자랑이 되어야겠다는 꿈을 가졌다.

 

나는 청소년이 꿈을 가지면 단점이 장점으로 바뀌는 것을 보았다. 꿈은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꾼다. 청소년의 가슴에 꿈을 심는 일은 그래서 중요하다.

 

 

-필자 김재일 약력

 

1953년생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졸업

한국일보·코리아타임스 기자

한국기자협회 국제교류분과 위원장

국제기자연맹(IFJ) 제 19차 총회 한국대표

시사저널 정치부장, 워싱턴 특파원

경원대 신방과 겸임교수

대한건설협회 상임감사

2008 아시아감사인대회 대회장

(사)한국감사협회 회장

 

현, (사)한국감사협회 명예회장

경기청소년운동연합 대표

새에덴교회 장로

 

-저서

팥으로 메주를 쑨다해도 (동연, 2002년)

첫사랑의 뜨거움을 찾아서 (쿰란, 2005년)

희망언어 (동연, 2007년)

오바마 뛰어넘는 상상력 스피치 (풀그림,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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