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 장군에게서 혁신전략을 배운다
이경수기자 2005-12-13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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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장군에게서 혁신전략을 배운다
이원덕 사회정책수석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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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원덕 비서관
<경제전쟁시대, 이순신을 만나다>는 경영학자의 시각에서 이순신 장군의 리더십을 평가한 책이다. 이 책은 이순신 장군의 전기를 쓴 것이 아니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집중 조명하고, 이순신 장군의 전쟁준비와 전시전략, 상황관리를 마치 CEO가 기업을 경영하고 관리하는 것과 같은 관점에서 세심하게 분석하고 평가하고 있다. 

 

이 책을 권하는 이유는 우리에게 주어진 시대적 소명이 이순신 장군이 짊어졌던 그것과 다르지 않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우리들은 지금 변화와 혁신을 요구받고 있다. 과거 개발독재시대, 관이 한다면 못할 것이 없던 시대, 행정서비스에 아무런 경쟁자가 없던 시대의 행정을 총체적으로 바꾸지 않으면 안 될 시대적 상황을 맞고 있는 것이다.

 

이순신 장군은 경영혁신에 성공한 CEO라 할 수 있다. 짐 콜린스(Jim Collins)의 표현대로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Good to Great)을 일군 경영혁신 성공사례라 할 수 있는 것이며, 세계일류를 넘어 세계최고를 이룩한 우리 역사상 얼마 되지 않는 사례인 것이다. 그것도 사회는 당파로 분열되고 기강은 해이해진, 말하자면 경영풍토로서는 대단히 불리한 여건에서 혁신을 통해 조선수군을 세계최강으로 만들어낸 것이다. 

 

이러한 이순신 장군의 리더십을 러·일전쟁 때 러시아 해군을 무찌른 일본의 해군사령관 도고 헤이아치로는 다음과 같이 극찬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영국의 넬슨은 군신이라 할 정도의 인물이 못된다. 해군역사상 군신이라고 할 수 있는 제독이 있다면 이순신 한 사람 뿐이다. 이순신과 비교하면 나는 하사관도 못된다”.

 

철저한 전시대비 ‘무결점 경영·6시그마운동’의 원조

 

이순신 장군은 1592년 7월 8일 한산 앞바다에서 일본전함 73척 중 59척을 격파 또는 나포한다. 자신의 전함은 한 척도 손상됨이 없이. 더구나 당시 일본수군의 총사령관 와키자카 야스하루는 이전 용인전투에서 2000의 군사로 6만의 조선군을 무찌른 일본 최고의 장군이었다. 저자는 이 승리가 그저 이루어진 것이 아님을 보여주고 있다.

 

이순신 장군은 기본과 원칙에 충실했다. 임진왜란 전에 조선은 오랫동안의 평화로 군기가 해이해졌고 적당주의가 판을 쳤다. 평화에 젖다보니 고된 훈련에 불평도 많았다.

 

그러나 이순신은 스스로 모범을 보임으로써 군기를 확립하고 고된 훈련을 이끌어갔다. 학익진법 활용을 위한 노젓기 및 함대 형성훈련, 그리고 신속한 방향전환 훈련도 예외가 아니다. 그 결과 그는 20세기 초 영국의 저명한 해군전략가 발라드(G. A. Ballard) 제독이 극찬할 정도로 한산해전에서 일사불란한 함대운용을 할 수 있었다.(34∼3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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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이순신 장군의 이러한 철저한 전시대비를 오늘날 성공한 기업의 업무·제품·서비스의 무결점 경영(Zero Defect) 또는 6시그마운동의 원조로 파악하고 있다.

 

정책품질 관리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우리 공직자에게도 이순신 장군의 전시준비와 관리는 벤치마킹의 대상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이순신 장군은 전략을 중시했다. 육전(陸戰)의 학익진법을 해전에 도입하여 한산대첩을 이루었다. 목표가 아무리 훌륭해도 이를 실현할 수 있는 전략지도가 없으면 공염불에 불과하다. 따라서 선진한국이라는 국가적 목표실현을 위해, 이 책은 이순신 장군에게서 전략적 마인드를 배우고, 전략 노하우를 충실하게 할 것을 우리에게 권하고 있다.

 

거북선 제작, 정책·행정 품질향상 혁신노력과 같아

 

이순신 장군은 신뢰재(信賴財)의 부자였고 이것이 승리의 원동력이었다. “그가 주위로부터 신뢰받을 수 있었던 것은 정직하고 원칙에 충실한 몸가짐 때문이었다. 그는 출장 갈 때 지급받은 쌀에서 남은 것이 있으면 반드시 도로 가져와 반납했다. 또 상관이 자기와 친한 사람을 무리하게 승진시키려 하자, 이를 저지시킨 적도 있다. 이런 성품 탓에 이순신은 윗사람에게는 미움을 사기도 했으나 부하들은 그를 진심으로 신뢰했다”.(57쪽)

 

부하와 국민의 이러한 신뢰가 백의종군 뒤 삼도수군통제사로 복귀했을 때 원균의 칠천량해전 참패로 괴멸된 조선수군을 다시 일으켜 세우고 명량대첩을 이루게 한 것이다. 기업경영에서도 신뢰재의 가치는 엄청나다. 에너지 회사로 급성장한 엔론이 파산한 것은 분식회계로 고객과 금융기관의 신뢰를 상실했기 때문이다. 반대로 존슨앤존슨은 자사제품인 타이레놀 복용으로 사망사건이 발생했을 때 투명한 정보공개로 고객의 신뢰를 얻어 위기극복에 성공했다.

 

이순신 장군은 혁신을 주도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거북선이다. 그는 일본군의 강점인 조총을 무력화하고 적이 우리 배에 올라와 칼싸움을 할 기회를 봉쇄하기 위해 배위를 목판으로 덮은 거북선을 만들었다. 목판 위에는 모두 쇠못을 꽂아 사방 어느 곳에서도 적군이 발을 디딜 수 없게 했다. 오늘날 성공하는 조직은 혁신조직이다. 세계 초일류기업 GE의 성공은 혁신을 통해 이루어졌다. 정부혁신이 시대적 사명인 오늘의 공직자들도 이순신 장군의 혁신정신을 본받아야 할 것이다.

 

이순신 장군은 기록관리에 철저했다. 난중일기는 1592년 임진년 1월 1일부터 시작하여 1598년 노량해전에서 최후를 맞기 이틀 전까지 2539일 간의 대기록이다. 그의 일기에는 날씨가 빠짐없이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우국충정의 심정과 전시상황까지 세심하게 기록되어 있다. 기록관리는 지식경영의 출발점이다. 기록관리의 선진화 없이 정부혁신은 불가능하다.

 

어린 시절 이순신 장군의 빛나는 승리는 당연한 것으로 생각했다. 왜냐하면 그는 성웅 이순신이므로.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면서 이순신 장군의 승리는 이길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음을 깨우치게 되었다. 그리고 그 이유를 우리 공직자가 이해한다면 정책과 행정서비스의 품질향상에 크게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이 책의 일독을 주저 없이 권하는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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