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자 회담 극적 타결 2005-09-19 20:05 가 본문내용 확대/축소 본문 북한과 미국 모두가 만족스러운 결과로 6자회담이 타결됐다. 이번 타결로 북한은 모든 핵을 폐기하기로 했고 적정한 시기에 경수로를 갖도록 했다. 공동합의문은 전문과 6개의 조로 구성돼 있다. 핵심조항은 1,2,3 조이다. 진통 끝에 타결, 북핵 문제 평화적 해결의 길로 들어서 우선 1조에서는 북핵 폐기 범위와 경수로 평화적 핵 이용권리 문제다. 북한은 모든 핵무기와 현존하는 핵 프로그램을 포기하기로 약속했고, 빠른 시일 내에 NPT와 IAEA의 안전조치에 복귀할 것을 공약했다. 미국은 한반도에 핵무기를 갖고 있지 않으며 핵무기 또는 재래식 무기로 북한을 공격 또는 침공할 의사가 없다는 것을 확인했다. 북한은 핵에너지의 평화적 이용에 관한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다른 참가국들은 이에 대해 존중을 표시하고 적당한 시점에 북한에 경수로 제공 문제에 대해 동의했다. 2조는 북미, 북일 관계 정상화다. 북한과 미국은 상호주권을 존중하고 평화적으로 공존하며 각자의 정책에 따라 관계정상화를 위한 조치를 취할 것을 약속했다. 북한과 일본은 평양선언에 따라 불행했던 과거와 현안사항의 해결을 기초로 하여 관계정상화를 위한 조치를 취할 것을 약속했다. 3조는 경제적 보상조치다. 중국, 일본, 한국, 러시아와 미국은 북한에 대해 에너지 지원을 제공할 용의를 표명했다. 한국은 북한에 200만킬로와트의 전력을 제공하는 지난 7월 12일의 제안을 재확인했다. 마지막 6항을 통해 6자는 5차 6자회담을 11월 초 베이징에서 열기로 합의했다. 이로써 북핵 문제가 평화적 해결의 길로 들어서게 됐고 한반도에 새로운 평화체제를 구축하기 위한 디딤돌이 마련됐다. 美 한반도에 핵무기 갖고 있지 않으며 북한을 공격할 의사가 없다는 점 확인 이번 합의는 우선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원칙과 평화적 해결책을 마련했다는데 의미가 있고 특히 세계에서 유일하게 냉전의 틀 속에 갇혀 있는 한반도에 평화체제의 기틀을 만들었다는데 큰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북한이 모든 핵을 포기하도록 한 것은 비확산 역사상 유례가 없는 획기적 조치라고 우리측 수석대표인 송민순 차관보는 의미를 부여했다. 또 북미, 북일 관계정상화까지 풀어나가도록 했다는 점은 북한이 국제사회에 들어오고 한반도 체제를 안정시키는 중요한 받침대가 될 수 있도록 했다는데 의미가 있다. 무엇보다 한반도의 항구적인 평화체제에 관한 협상을 가질 것이라고 명시함으로써 한반도 불안의 가장 큰 원인이었던 냉전적 대립체제가 평화체제로 전환되는 역사적 이정표를 세웠다는데 가장 큰 의미가 있다. 앞으로 평화체제를 다룰 포럼이 만들어져 논의가 시작되면서 분단체제가 종식되고 한반도에 새로운 질서가 자리잡게 될 것이라는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냉전적 대립체제가 평화체제로 전환되는 역사적 이정표 세웠다는데 가장 큰 의미 이날 합의에 이르기까지 마치 한편의 드라마처럼 반전에 반전을 거듭했다. 지난 7월 26일 시작된 1단계 회담에서는 합의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지만 북한의 핵폐기 범위와 평화적 핵이용 권리 문제가 막판 쟁점으로 떠오르면서 휴회에 들어갔다. 휴회 뒤 37일 만인 지난 13일 재개된 2단계 4차 6자회담에서는 경수로 문제가 최대 쟁점으로 떠오르면서 북한과 미국의 한 치의 양보 없이 대치하는 상황이 계속됐다. 북한은 핵 폐기의 대가로 경수로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었지만 미국은 경수로는 절대 안된다는 입장으로 맞섰다. 한 치의 진전도 보이지 못하던 회담은 지난 16일 중국이 4차초안에 대한 수정본을 제시하면서 급박한 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북한에 대해서는 선핵포기 불가 원칙에서 물러설 것을 요구하고, 미국에 대해서는 평화적 핵 이용권리와 경수로 문제를 양보하도록 하는 것이 중국이 제시한 공동성명 초안의 핵심이었다. 북한은 물론 미국도 이같은 초안에 거부 의사를 밝혔다. 특히 참가국들은 최종 전체회의 일정을 17일에서 18일로, 18일에서 다시 19일로 옮기면서 몇 차례 결렬 위기를 넘기고 의견을 좁혀나간 끝에 합의에 도달했다. 이로써 지난 2003년 8월 1차 회담부터 시작된 6자회담은 4차까지 이어지는 진통 끝에 2년여 만에 공동성명에 합의해 북핵 문제 해결의 큰 가닥을 잡게 됐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2년여 만에 공동성명에 합의 회담이 합의로 이어지기까지는 중국과 한국의 중재노력이 뒷받침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6자회담이라는 틀이 위력을 발휘했다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북미 양자협상에서는 도저히 풀 수 없는 문제지만 6자회담이라는 틀이 만들어짐으로써 중재도 하고 압박도 하는 형태로 북미간 직접적 대립과 갈등을 풀어갈 수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성과없이 휴회에 들어갈 경우 다음 회담은 일정조차 잡기 어려워지고 이로 인해 6자회담이 깨지는 것을 각국이 원하지 않았던 것도 6자회담이 주효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북한도 노골적으로 거부입장을 밝히지 못했고 미국 역시 회담 결렬의 책임을 떠안게 되는 부담을 피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런 가운데 중국은 의장으로서, 한국은 우리의 입장을 가지고 북한과 미국에 대한 적극적인 설득 작업을 벌였다. 반기문 장관은 뉴욕에서 라이스 장관을 만나 미국을 설득했고 남북장관급 회담이 열렸던 것도 분위기 조성에 도움이 됐다는 것이 대표단의 설명이다. 무엇보다 송민순 수석대표 등 우리 대표단이 북한과 미국 어느 한 쪽 편을 들지 않으면서 중국과 함께 양측을 설득한 것이 주효했다. 이번 4차 6자회담은 우리 정부의 대북 중대제안이 계기가 돼 열리게 됐고 막판 합의 과정에서도 적극적 중재를 통해 합의를 이끌어냈다는 점에서 우리의 외교력이 돋보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어느 한 쪽 편 들지 않고 중국과 함께 북미 양측 설득한 점이 주효 이번 합의로 문제가 해결된 것이 아니라 문제 해결을 향한 새로운 발걸음을 내딛기 시작했다고 할 수 있다. 크리스토퍼 힐 미국측 수석대표는 전날 "공동문건이 채택된다면 이는 북한 핵 문제의 완전한 해결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시작"이라고 말했다. 앞으로 북한의 실천과 이의 검증과정을 중시하겠다는 것이다. 또 공동성명에 명확하지 않은 표현들이 들어있는 것도 자칫하면 분쟁의 불씨를 만들 가능성도 있다. 대표적으로 적절한 시점에 경수로 제공문제에 대해 논의하기로 한 것은 적절한 시점을 놓고 해석상의 차이를 불러 올 수 있다. 또 북한이 NPT나 IAEA에 복귀하는 것도 조속한 시기라는 불명확한 표현을 사용했다. 6개국은 11월 초 베이징에서 5차 6자회담을 열기로 했는데 이 자리에서 이와 관련한 구체적인 논의가 시작되면 논란도 적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94년 제네바 합의가 이뤄진 뒤 이를 끝까지 이행하지 못하게 된 배경에는 북미간 불신이 크게 작용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반도 평화체제의 정착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북미간 신뢰의 회복이 우선돼야 할 과제로 보인다. 이번 타결로 안보리스크가 없어지므로 해서 우리나라의 대외신인도가 높아질 것이며, 대외 신인도 제고를 바탕으로 외국인 투자의 활성화, 금융권의 해외 자금조달 여건 등 유무형의 막대한 효과를 기대해 볼 수 있다.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목록 댓글목록 이전글 <font color=red>용인 사이버 페스티벌</font> 개막식,<br>그 현장 속으로 ① 05.09.24 다음글 대통령, 추석 메시지 05.09.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