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 문효공 손순(孫順) 추향제(묘제)에 참여하다 헌관으로 손영동 사무국장이 맡아 집행 손남호 2025-11-25 13:00 가 본문내용 확대/축소 본문 밀양손씨 중앙종친회(회장 손남호)는 2025년 11월 22일(음10월3일) 토요일 11:30 경북 경주시 건천읍 모량리 산 536-1 소재 시조문효공 묘소에서 시조문효공 유적보존회(회장 손상규) 주관으로 밀양, 평해, 경주, 손씨등 손씨 후손 100여명과 중앙종친회 손교영 종사국장외 임원 15명이 참석하여 추향제를 거행하였다. 손순(孫順; 고본古本에는 손순孫舜이라고 했다)은 모량리 사람이니 아버지는 학산이다. 아버지가 죽자 아내와 함께 남의 집에 품을 팔아 양식을 얻어 늙은 어머니를 봉양했는데 어머니의 이름은 운오였다. 평소 효심이 강한 공은 어머니가 밥을 굶는 것을 보고 안타가워 하다 자식은 다시얻을수 있으나 부모는 다시 얻을수 없다는 생각을 하였다. 손순에게는 어린 아이가 있었는데 항상 어머니의 음식을 빼앗아 먹으니, 손순은 민망히 여겨 그 아내에게 말했다. "아이는 다시 얻을 수가 있지만 어머니는 다시 구하기 어렵소. 그런데 아이가 어머님의 음식을 빼앗아 먹어서 어머님은 굶주림이 심하시니 이 아이를 땅에 묻어서 어머님 배를 부르게 해드려야겠소." 라거 아내에게 말했다. 이에 아이를 업고 취산 (이산은 모량리 서북쪽에 있다) 북쪽 들에 가서 땅을 파다가 이상한 석종을 얻었다. 부부는 놀라고 괴이히 여겨 잠깐 나무 위에 걸어 놓고 시험삼아 두드렸더니 그 소리가 은은해서 들을 만하다. 아내가 말했다. "이상한 물건을 얻은 것은 필경 이 아이의 복인 듯싶습니다. 그러니 이 아이를 묻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라고 남편에게 말했다. 손순 공은 이 말을 옳게 여겨 아이와 석종을 지고 집으로 돌아와서 종을 들보에 매달고 두드렸더니 그 소리가 대궐까지 들렸다. 흥덕왕이 이 소리를 듣고 좌우를 보고 말했다. "서쪽 들에서 이상한 종소리가 나는데 맑고도 멀리 들리는 것이 보통 종소리가 아니니 빨리 가서 조사해 보라." 왕의 사자가 그 집에 가서 조사해 보고 그 사실을 자세히 아뢰었다. 이에 왕은 말했다. "옛날 곽거가 아들을 땅에 묻자 하늘에서 금솥을 내렸더니, 이번에는 손순이 그 아이를 묻자 땅 속에서 석종이 솟아나왔으니 전세의 효도와 후세의 효도를 천지가 함께 보시는 것이로구나." 이에 집 한 채를 내리고 해마다 벼 50석을 주어 순후한 효성을 숭상했다. 이에 손순은 예전에 살던 집을 희사해서 절로 삼아 홍효사라 하고 석종을 모셔 두었다. 진성왕 때에 후백제의 횡포한 도둑이 그 마을에 쳐들어와서 종은 없어지고 절만 남아 있다. 그 종은 얻은 땅을 완호평이라 했는데 지금은 잘못 전하여 지량평이라고 한다. 밀양손씨 중앙종친회에서는 순순 시조의 추향제에 손영동 사무국장이 헌관으로 참여 하였으며 공의 효성에 대한 음덕을 기리고 후손들에게 알리는 사업을 하고 있다는 점을 전국의 종원들에게 홍보하고 있고 내년부터는 중앙종친회에서 전국의 종원들에게 참석하도록 홍보하겠다는 약속도 하여 밀양손씨의 시조에 대한 예의를 지켜 주목된다. 삼국유사(三國遺事)에 의하면 옛날 진한(辰韓)땅에 육촌(六村)이 있었는데 이 가운데 세번째 기록에 무산대수촌(茂山大樹村)이 있고 촌장(村長)에는 구례마(俱禮馬)로 처음 이산(伊山)에 내려와 모량부(牟梁部) 손씨(孫氏)의 조(祖)가 되었다고 한다. 즉, 손씨(孫氏)의 원조(元祖)가 된 것이다. 동국사략(東國史略)에서는 조선(朝鮮)백성이 동해빈(東海濱)에 사는데 육촌(六村)으로 나뉘어 진한의 육부(六部)가 되었다고 하였다. 그리고 육부(六部)가 알천(閼川)에 모여 상의하여 임금이 없어서 백성(百姓)이 다 방종하고 무례하니 유덕한 사람을 군주로 선출키로 하고 박혁거세를 옹립하여 임금으로 모시고 서라벌에 도읍을 정하였다 했다. 이 때가 단기 2277년 (서기전 57년)이다. 그리고 동국통감(東國通鑑)에는 신라유리왕(新羅儒理王) 9년 단기 2365년 (서기 32)에 육부명(六部名)을 고쳐서 대수부(大樹部)를 모량부(牟梁部)로 하고 성씨(姓氏)를 손씨(孫氏)로 사성하였다. 진한(辰韓) 6부촌장(六部村長)을 모신 재실로 제3대 유리왕(儒理王)에 의하여 손씨(孫氏)의 사성을 받으신 휘 구례마(俱禮馬)는 시호(諡號)는 충렬군(忠烈君)이요 후에 문의왕(文義王)에 추봉되었다. 신라 개국공신(開國功臣)들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서기 1975년 대한민국 박정희 대통령(大韓民國 朴正熙 大統領) 치하(治下)에 이르러 경주 남산(南山) 아래(下)에 입덕묘(立德廟)를 세워서 육부촌장(六部村長)의 위패를 모시고 매년 음력 8월 17일을 기하여 향사(享祀)를 모시고 있으며 홍익문(弘益門)과 대덕문(大德門)이 있고 관리사무소까지 병설되어 있으며 광대(廣大)한 묘역(廟域)으로서 성지화(聖地化) 되고 있다. 공(公)의 휘(諱)는 순(順)이요 자(字)는 사구(士久)이시니 신라(新羅) 모량부(牟梁部) 사람 태자사인(太子舍人) 휘 학산(鶴山)의 아드님이다. 그리고 우잠태수(牛岑太守) 백영(白永)의 따님에게 장가들어 취향산(醉香山) 밑에서 살으셨다. 이 때가 통일신라(統一新羅) 흥덕왕(興德王) 10년 을묘(乙卯) 서기 835년이다. 밀양손씨 중앙종친회는 시조 문효공(孫 順)의 출천대효정신(出天大孝精神)을 계승하여 숭조효친(崇祖孝親)과 위선사상(爲先思想)을 선양하여 전국 밀양손씨를 결속 총괄하고 종친간에 화목단결, 상부상조하여 자손만대의 번영을 도모함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아울러 우리 종친회가 시대의 요구에 부응하고 사회발전에 공헌하도록 최선의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손남호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목록 댓글목록 이전글 보성 금호리 목사공파 후손 충효문 향토문화제로 지정받다, 25.11.26 다음글 밀양손씨 시조 손순 19세손 밀성군 손빈(孫贇) 추향제 (묘 제) 참여하다 25.11.24